『莊子』의「秋水」에 수록 되어있는 올빼미와 원추새의 우언(寓言)이다.혜자(惠子)가 양(梁)나라에서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莊子)가 그를 찾아가 만나려하자 어떤 사람이 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가 와서 당신을 대신해서 재상이 되려고 합니다.” 이에 혜자가 두려워서 온 나라 안을 사흘 밤낮 동안 샅샅이 수색했다. 장자가 찾아가서 그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남쪽 지방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원추(鵷鶵)라고 한다네. 자네는 알고 있는가? 이 원추는 남쪽 바다에서 날아올라 북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네. 이에 올빼미가 썩은 쥐 한 마리를 얻었는데, 원추가 그곳을 지나가자 올빼미가 위를 쳐다보고 꾁!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더군. 지금 그대는 그대의 양나라 재상 자리를 가지고 나에게 꾁! 하고 소리를 지르는가!”(莊子』, 「秋水」, “惠子相梁 莊子往見之 或謂惠子曰 莊子來 欲代子相 於是惠子恐 搜於國中三日三夜 莊子往見之曰 南方有鳥 其名為鵷鶵 子知之乎 夫鵷鶵發於南海 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飲 於是鴟得腐鼠 鵷鶵過之 仰而視之曰嚇 今子欲以子之梁國而嚇我邪”)
■학문이 부족하면서 서둘러 벼슬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학문이 충분하면서 벼슬하지 않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學不足而先求行 不可也 學已足而不求行 亦過也 이이(李珥, 1536~1584), <증유응서몽학치군설(贈柳應瑞夢鶴治郡說)>,《율곡전서(栗谷全書)》[해설]위의 글은 율곡 이이가 절친한 벗인 대흥 현감(大興縣監) 유몽학(柳夢鶴)에게 준 글의 일부이다. 선조 임금이 율곡에게 홍문관 직제학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율곡은 파주에서 병이 있다는 핑계로 사직하고 나오지 않았다. 선조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대궐에 나아가 임금의 은혜에 감사의 예(禮)를 다하고 세 번이나 상소를 올려 사직의 뜻을 밝히니 마침내 임금이 물러감을 허락했다. 다시 삼사(三司, 사헌부·사간원·홍문관)에서 상소하여 율곡이 벼슬길에 나오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유몽학이 율곡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사직을 원하여 물러가게 되었으니 마음이 가볍겠으나, 모두가 물러가려고만 하면 나라의 일은 누가 하겠는가.”라고 했다. 율곡이 웃으면서 “만일 위로 정승부터 아래로 참봉까지 모두 물러가려고만 하는 사람이라 면, 국가는 저절로 융성해질 것이니, 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염려는 없을 것이
옛사람의 작품을 본뜨려고만 하고 옛사람의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은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차라리 옛사람의 뜻을 잃지 않는 것만 못하다. -與其有意古作而不得古 不若因用時語而寧不失古人之義여기유의고작이부득고 불약인용시어이녕불실고인지의최국술(崔國述),〈고운선생문집편집서(孤雲先生文集編輯序)〉,《고운집》[해설]이 글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 최국술이 고운 선생의 글을 모아 문집을 간행하면서 서문에 실은 글이다. 세상에서 고운 선생의 글을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화려하다고 평하자, 최국술은 고운의 글이 옛 문장 형식과 다르긴 하여도 그 안에 담긴 뜻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시대가 바뀌어도 고전의 가치가 빛나는 것은 ‘형식’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도 그 안에 전통적인 가치를 녹여서 물질만능의 삶 속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각박한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며, 올바른 가치를 정립해주고, 삶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반면에 전통적인 소재를 취해 만든 작품이라 해도 껍데기만 전통적인 것들로 포장되었을 뿐, 속은 오로지 상업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 경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