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의 추락’ 리버풀 4연패 수렁… 첼시는 ‘겨울 징크스’ 조짐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시즌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이 중위권 팀에 발목을 잡히며 충격적인 4연패의 늪에 빠졌다. 리버풀뿐만 아니라 상위권 경쟁을 펼치는 첼시 역시 겨울철 빡빡한 일정 속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리그 순위 싸움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너진 챔피언의 자존심과 구멍 난 수비

리버풀은 26일(한국시간) 영국 브렌트퍼드의 지테크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2026 EPL 9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브렌트퍼드에 2-3으로 패했다. 지난 시즌 리그 전체를 통틀어 단 4패만을 기록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리버풀은 올 시즌 초반 9경기 만에 벌써 4패째를 떠안았다. 직전 시즌 우승팀이 4연패를 당한 것은 2016-2017시즌 레스터 시티, 2020-2021시즌 리버풀, 지난 시즌 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역대 4번째 사례다. 리버풀 구단 자체 기록으로 봐도 2021년 2월 이후 약 4년 8개월 만에 겪는 굴욕적인 연패다.

경기 내용은 결과만큼이나 참담했다. 지난 라운드까지 13위에 머물던 브렌트퍼드를 상대로 리버풀은 시종일관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세트피스 수비와 역습 대처 미숙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전반 5분 만에 롱스로인 상황에서 당고 와타라에게 시저스킥 선제골을 내주더니, 전반 막판에는 윙어 케빈 샤데의 빠른 발에 뒷공간이 완전히 뚫리며 추가 실점을 허용했다.

추격의 불씨를 살리려던 찰나, 믿었던 ‘통곡의 벽’마저 무너졌다. 후반 15분,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센터백으로 불리는 피르힐 판데이크가 무리한 수비로 페널티킥을 헌납했고, 이를 이고르 티아고가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점수 차는 다시 벌어졌다. 경기 종료 직전 터진 무함마드 살라의 만회골은 승부를 뒤집기에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천문학적 이적료의 배신, 그리고 ‘007’의 굴욕

리버풀의 부진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맨체스터 시티의 하락세를 틈타 42년 만의 리그 2연패를 노리던 리버풀은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무려 4억 5천만 파운드(약 8천600억 원)를 쏟아붓는 광폭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영입한 특급 선수들은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로 일관하고 있다.

가장 뼈아픈 건 미드필더 플로리안 비르츠의 부진이다. 1억 1천600만 파운드의 사나이 비르츠는 공식전 7경기에 출전해 ‘0골 0어시스트’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현지 팬들은 그에게 ‘007’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붙이며 조롱 섞인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뉴캐슬에서 이적 파동 끝에 합류한 알렉산데르 이사크 역시 프리시즌 훈련 부족 탓인지 날카로움을 잃은 채 득점 없이 도움 하나만을 기록 중이다.

‘에이스’ 살라의 노쇠화와 슬롯 감독의 딜레마

팀의 상징인 무함마드 살라의 에이징 커브도 리버풀의 고민을 깊게 한다. 33세에 접어든 살라는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가 눈에 띄게 줄었다.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의 빈자리를 채운 코너 브래들리와의 호흡도 엇박자를 내고 있어 파괴력이 반감됐다는 평가다. 오히려 살라를 벤치에 앉혔던 지난 챔피언스리그 프랑크푸르트전에서 5-1 대승을 거둔 점은 아르네 슬롯 감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라가 선발로 나서지 않을 때 팀의 에너지 레벨이 더 높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슬롯 감독이 ‘살라 벤치행’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번 패배로 리버풀은 6위(승점 15)로 추락했고, 대어를 낚은 브렌트퍼드는 10위(승점 13)로 도약했다.

첼시도 위태롭다… ‘마레스카 매직’의 유효기간?

리버풀의 추락과 더불어 런던의 강호 첼시 역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월에서 1월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일정은 전통적으로 EPL 팀들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무대인데, 첼시는 작년 이맘때 겪었던 악몽을 재현하듯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엔조 마레스카 감독은 전술적 역량이 뛰어나지만, 그의 축구는 선수들의 체력이 뒷받침될 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마레스카 감독 부임 후 첼시는 경기 간 휴식일이 5일 이상 보장될 때는 높은 승률을 기록했지만, 클럽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경기력 저하가 뚜렷하다. 최근 아탈란타와 리즈 유나이티드전 패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무거운 몸놀림은 젊은 스쿼드가 겪고 있는 피로도를 여실히 증명한다.

반면, 최근 5경기에서 4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에버턴은 이러한 강팀들의 틈새를 파고들 준비를 마쳤다. 흔들리는 첼시와 기세 좋은 에버턴의 맞대결은 상위권 판도를 가늠할 또 다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